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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봄, 5개의 명제

1    짙은 녹색의 계절이 오기 전 연둣빛 봄날이 좋아요. 이때가 제일 아름다울 때지요. 파릇파릇 올라오는 새싹도 대견하고요. 봄빛 햇살에 얼굴 내미는 꽃망울들도 자랑스러워요.   목련     한날의 햇살이 푸른 밤 별빛으로 돌아 뜰 안 가득 펼친 서러움 한 뼘 빛으로 충분한 자리 숨을 고르는 설레임으로 한껏 부푼 하얀 봉오리 서둘러 떠나려는 너는 얼굴을 들어도 좋으리 느리게 피어도 좋으리 봄 길에서 만나는 쉼이 되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 하루가 되어도 좋으리    2  여행은 속삭임과 더불어 가는 거라네요.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막 들려와요. 바람도, 꽃도, 나무도, 바다도 속살거려요. 파란 하늘에 이름 석 자를 쓰다 말고 날아가는 새 무리를 바라보았어요. 모든 것이 떠나도 봄은 어김없이 곁에 오고 있어요. 길을 걷다 보면 멀리서부터 오후가 사라져가요. 꽃이 피지 않은 거리에도 향기가 나요.   봄날 아침     봄날 아침은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이어요 나뭇가지 설레임으로 푸릇   물오른 새색시이어요 바쁠 곳도 없이 너를 만나려 나서는   지극한 일상의 기쁨이어요   두 팔 벌려 안기어 오는 사랑스런 봄날 아침이어요   봄날 아침은 너의 하루가 시작되는 하늘이어요 나의 하루도 그 길 따라 펼쳐져 눈가에 흐려오는 눈물이어요 서로를 향해 걸어오는 반가운 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허허한 봄날 아침이어요   봄날 아침은 하얀 꽃망울 품고 있는 언덕이어요 저미도록 꽃잎을 접고, 펼치며 제 손으로 뿌려 놓은 향기 이어요 깊이 들이마시면 막혔던 숨 터지는 향기론 봄날 아침 이어요    3  사진을 찍을 때 귓가에 수신처럼 들리는 소리가 있어요. 마음속에 울림으로 담겨져 와요. 기억해 달라 이야기 안 해도 자동으로 그 시간 그 풍경으로 스며들게 되요. 사진 속에는   그 사람의 호흡과 체온, 표정이 어우러져 있어요. 사진 속에는 안간힘이 담겨 있어요. 소리 없는 몸부림이 있어요. 그것이 들풀이든, 산비탈의 집들이든,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간이역이든, 어딘가를 향하는 걸음이든 절실한 안간힘 속에 담겨있어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거에요.   안간힘   물 소릴 들으며 잠이 들었나 봐 짧은 시간 긴 꿈속에 있었네 산을 끼고 바다가 보이는 한 폭의 그림 꽃마당에 꽃들이 잠들어 있네 두 팔 뻗어 감은 눈 만져주었네 딜빛에 눈을 뜨니 버드나무 가지 어깨를 스치네 그러니 사랑아 잘 있거라 그리고 이별아 잘 가거라    4  터널을 빠져나가자마자 빛이 왔어요.   은빛 바다도 함께 왔어요. 덩그렇게 남겨진 긴 터널 앞에 생생한 기억으로 돌아온 우리의 정원이 거기 있었어요. 저 빨간 양귀비꽃 무슨 영화가 있길래 저리도 붉게 물들었을까?   봄은 흐르고   그리 아프시어도 붉게 피시려고요 나를 버리어도 사랑 하시려고요 내 속 피멍이 들어도 참으시려고요   봄은 흐르고 홀로 뜨거워 스스로 일어서는 여린 꽃망울 송송 맺힌 그리움으로 그대를 향해   깨어있어 붉게 피어나고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명제 향기론 봄날 연둣빛 봄날 봄날 아침

2024-04-2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봄날은

봄날은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이어요 나무가지 설레임으로 푸릇 물오른 바쁠 곳도 없이 너를 만나려 나서는   지극한 일상의 하루 두 팔로 안아보는 봄날 아침이어요     봄날은 너의 하루가 시작되는 하늘이어요 나의 하루도 그 길따라 펼쳐져 눈가에 흐려오는 눈물이어요 서로를 향해 걸어오는 반가운 봄날 아침이어요     봄날은 하얀 꽃 망울 품고 있는 언덕이어요 저미도록 꽃잎을 접고, 펼치며 제 손으로 뿌려 놓은 향기 이어요 깊이 들이마시면 막혔던 숨 터지는 봄날 아침이어요     새소리가 들리는 곳, 뒤란이 바라다보이는 데크에 앉아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이 온몸을 나른하게 녹이고 있다. 둥근 유리 테이블에 올려놓은 Note book에서는 J. Offenbach의 Belle nuit의 달콤한 첼로 음악이 내 마음의 맨바닥을 쓸어주는 듯 봄날 아침의 여유를 수놓고 있다. 새 한 마리 날아와 데크 펜스에 앉았다. 가벼운 몸짓으로 움직이다 물끄러미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다. 무엇을 한참이나 바라보는 듯,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이나 하는 듯 머리를 떨구기도 하다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움직이기도 한다. 내가 즐기고 있는 이 빛나는 봄날 아침을 함께 즐기기라도 하는 듯 한동안 곁을 떠나지 않았다. 꼭 정지된 시간에 그려놓은 풍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지만 정지돼 있는, 흐르지만 움직이지 않는 봄날 아침을 보내고 있다.   멀리서 바라볼 때 눈에 띄는 풍경이 있었다. 가까이 가 보았더니 가시가 엉켜있는 덤불이었다. 실망하여 발걸음을 돌려 돌아오는 길에 발 밑에 이름도 모르는 들꽃이 피어있었다. 가까이 보아서 이쁜 꽃이 멀리 떨어져서 보니 민민한 들판이 되기도 하였다. 자유가 멋져 보여 다가갔더니 오히려 단단한 속박이 되기도 하였다. 사람도 별반 틀리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 같아서 성급히 생각하고 발을 담갔다가는 물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도 종종 만난다. 오래 지내봐야 한다. 속을 다 내어줄 것 같다가도 이해 못할 차가운 태도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그 말은 나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누구나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일들에 접할 때마다 나의 잣대가 아닌 너의 바로미터로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시간이 멈추도록 입맞추고 싶을 때가 있다.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은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날이 져 어두워지면 책 한권을 들고 나와 한 소절씩 되뇌이며 갔던 길을 되돌아 오고 싶을 때가 있다. 읽고 또 읽어 어두운 밤 책을 보지 않아도 낭송이 절로 되는 신기함을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시간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을 때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느낌으로 받아 안고 싶을 때가 있다. 시간을 길게 늘이고 싶을 때는 깊은 호흡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시간이 내 머리를 차오를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가 있다. 물감이 번지는 노을 아래 스포트라이트를 켜고 여여한, 끝이 없는 길을 걷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라는 캔버스에 단순히 물감을 덧칠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관찰을 쏟아 놓는 것이다. 풍경이나 사물이 우리와의 사이에 가려져 있는 것은 우리의 손길이나, 발길이나, 우리의 시선에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는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함께 보는 나만의 마음의 눈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지구가 다른 지층을 쌓아가듯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지구의 현상을 평생 만지거나 느껴보거나 경험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나에게서 가려져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사물을 넓게, 깊게, 때로는 아주 가깝게, 오랫동안 자세히 경험하려 하는 노력을 게을리한 탓이 아닐는지. 나에게 있어 ‘다시 그림이다.’라는 명제 앞에 떨리는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봄날 봄날 아침 나무가지 설레임 첼로 음악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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